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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현재가치를 선호하는가?>

인간의 일생은 유한하다. 그것은 각자에게 할당된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인류가 걸어온 그 긴 역사 속에서 나의 시간 그리고 일생은 아무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작고 짧은 만큼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 1시간 혹은 1년은 생을 단축하는 비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우리는 시간을 ‘돈’에 비유한다. 솔직히 이 비유는 합당치도 않고 마음에도 들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일생을 ‘돈’이라는 멍에를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양보해도 될 듯하다.

어쨌든 엄격한 의미에서 ‘시간은 돈’이라는 제목은 조금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은 돈의 가치를 바꾸는 마법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 마법과 같은 힘이 시간과 돈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 우리가 시간을 돈에 비유하는 것도 이러한 연관관계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시간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이 무척 어렵지만 재무적 관점에서는 그 이해가 훨씬 수월하다. 시간의 가치를 결정짓는 ‘고리’는 단 몇 개의 수식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식을 통해 우리는 시간과 돈 사이의 연관관계를 이해하고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시간과 돈이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기 이전에 좀 더 직관적으로 시간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을 살펴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왜 시간에 따라 돈의 가치가 달라지는지 알지 못한다면 그 관계를 나타내는 수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 그 시간적 간격 사이에서

지금 당장의 10만원과 5년 후 10만원 중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을까? 만약 가치가 다르다면 그 차이는 ‘시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까? 차이를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자세한 사연까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시간이 그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는 현재의 10만원이 더 큰 가치가 있다. 왜 그런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당신에게 지금 당장 10만원을 드릴까요, 아니면 5년 후에 드릴까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당연히 지금 당장 10만원을 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재무이론에서는 ‘유동성 선호(liquidity preference)’라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현재의 돈을 더 소중히 여기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가 있다.

현재를 선호하게 하는 원인들

앞서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현재의 돈의 가치를 더 크게 해 준다. 지금 당장 내가 죽을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거의 없다. 설사 운 나쁘게 돈을 받자 마자 죽는 불상사가 일어나더라도 이미 돈 10만원의 소유권은 나에게 넘어와 있는 상태이다. 내가 쓰지는 못하더라도 내 가족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죽어서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하지만 5년 후 10만원을 받기로 한다고 하자. 받기도 전에 생을 마치는 슬픈 일이 생길 수가 있다. 정말 운 나쁘게 죽기라도 한다면 돈을 받기는 그만큼 힘들어 질 것이다. 내가 죽는다면 돈을 빌려간 사람이 오리발 내밀기는 더 없이 좋은 상황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생산 가능성에 있다. 지금 당장 10만원 받아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의 주식을 시가 1만원에 10주 사두었다고 하자. 물론 회사가 망하는 불행한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정말 튼튼한 회사라고 가정하자. 5년 뒤 시가가 5만원이 되었다면 나는 40만원의 돈을 앉아서 번 셈이다. 하지만 5년 뒤에 10만원을 받기로 했다면 5년간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다못해 복권도 못 사고 경마도 못하는 것이다(이건 생산적인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만큼 뭔가 생산적인 일에 돈을 투자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 원인은 나의 선택과 관련된 것들이다. 즉 나 자신의 선택 가능성이 미래의 시간 속에서는 제약을 받게 되고 그것이 미래 10만원의 가치를 현재의 그것보다 작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시간이 돈 10만원의 가치를 변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은 다음의 두 가지 예에서도 동일한 힘을 발휘하지만 이전의 두 가지 이유와는 그 범주가 다르다.

물가는 일반적으로 상승한다. 어린 시절 돈 10원, 100원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했는가를 떠올려 보라. 지금도 그런가? 지금은 돈 1,000원으로도 그런 행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물가가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물가가 상승하는 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물론 물가는 하락하기도 하지만 아주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금 10만원과 미래의 10만원의 가치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10만원이면 좋은 지기와 밤새도록 소주를 마실 수 있는 돈이지만 5년 후 소주 한 병에 10만원이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일 외에도 우리는 현실은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그 끔찍했던 외환위기를 경험하리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잘 다니던 직장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 받기를 미뤘던 퇴직금을 못 받게 되리라고 어느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불확실성은 이렇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은 시간이 길수록 커지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현재의 10만원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돈 10만원을 5년 뒤 갚기로 한 친구의 마음이 바뀌어 우정이 상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장 10만원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시간이 가진 힘

이렇게 현재의 돈을 더 선호하도록 하는 데에는 4가지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좀 더 이론적으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시차선호(time preference)
2. 생산성(productivity)
3. 인플레이션(inflation)
4. 불확실성(uncertainty)

이러한 원인들을 만드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4가지 원인이 잠재되어 있어 현재와 미래의 돈이 갖는 가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제 돈의 가치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그 가치를 구체적인 수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살펴 보게 될 것이다.

이 글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화폐의 시간가치(time value of money)’이다. 이는 재무이론 또는 회계학을 이해하는 가장 기초가 된다. 이론적 필요뿐만 아니라 실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한 번 알면 다시 공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쉽고 간단하지만 처음 내용을 접한다면 한없이 어렵기만 하다. 왜 시간에 따라 돈의 가치가 변할까? 어떻게 수치로 산출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디에 쓰는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생각만큼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글을 읽고 생각해 본다면 결코 어렵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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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열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낯선 나라의 언어인 영어를 먼저 가르치고, 조금 더 큰 후에는 뛰어 놀 시간도 없이 하루 해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도록 강요한다. 사춘기 시절은 더욱 잔혹하다. 오직 더 좋은 학교, 학과를 위해 수학 공식과 영문법이라는 지식을 머리 속에 구겨 넣도록 강요 받을 뿐 그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민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제 낭만적인 대학 시절은 없다. 입학식과 함께 시작된 취업 전쟁은 새벽 도서관을 어수선한 시장 바닥보다 더 북적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이렇게 우리는 남들보다 더 영리해지기 위한 전쟁에 온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세기와 세대를 넘어 우리는 확실히 이전보다 똑똑해지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어느 누구도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학창 생활이 끝나고 사회에 첫 발을 내 디딘 이후 희망에 가득 찼던 미래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고 자신의 삶이 낡고 누추해지고 있다는 절망을 느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채웠던 지식이 쓸모 없다는 사실은 그런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어째서 우리는 이미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을 만큼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할까?

‘일요일은 엄마에게 복수할 시간이 많아서 좋다’는 학업에 지친 어린 아이의 섬뜩한 한마디가 우리에게 그 해답을 준다. 행복은 건강함에서 온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영리한 사람을 만드는 데에만 골몰해 왔을 뿐 건강한 사람을 만드는 데에는 인색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편이 옳다. 건강하지 못하고 영리한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교활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똑똑해 질 수 있다. 건강함은 우리 삶을 역동적으로 그리고 희망에 가득 차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기업도 다름이 없다. 지금껏 20세기를 관통해 온 경영의 화두는 ‘조직의 영리함’이었다. 우리는 조직을 좀더 똑똑하게 만드는 것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어 왔다. 효과성은 무시한 체 오로지 효율의 미덕에만 매달려온 우리에겐 끊임없는 대안이 요구될 뿐이었다. 사람들은 지쳐갔고 경쟁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 그 대안의 세기의 끝 자락에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 제시된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지식경영에 접근해 갈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보아 왔던 이론적 정의들의 정적인 간결함은 뒤로 하고 다소 장황하지만 동적이며 현실적인 면들을 살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식경영’이라는 어휘가 주는 역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식경영은 역설적이다

지식경영은 역설적이다. 지식경영은 그 어휘에서 ‘조직의 영리함을 추구하는 극단’에 선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바로 지식경영은 ‘조직의 건강함’을 추구하고 있고 그래서 역설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의 창출과 공유는 조직이 건강하지 못하면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이론적 함의는 그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리석게도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간과한다. 더 쉽게 밖으로 드러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영리한 아이를 그리고 영리한 조직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조직이 지식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행복을 얻고자 한다면 건강한 정신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리하기만 한 아이는 어머니에게 복수할 기회만 노리는 괴물일 뿐이고, 영리한 조직은 나태함에 빠져 금방 무너질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식경영을 실천하고자 하는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 또한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경영을 단순히 지식을 모으고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또 다른 한계에 다다르게 될 뿐이다. 그것이 갖는 근본적인 전제와 의미를 바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경영의 핵심은 ‘건강한 조직 만들기’에 있다. 건강한 조직은 스스로 영리해 질 뿐 아니라 어떠한 외부적 충격에도 잘 견뎌낸다. 또한 ‘영리함’과 ‘건강함’은 상생의 순환고리를 만들어 변치 않는 경쟁력을 창출하게 된다. 더불어 ‘건강함’은 조직 구성원들이 지식을 창출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어 준다. 이제 몇몇 실패 사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영리한 조직을 만들기에 골몰했을 뿐 건강한 조직 만들기에는 실패했다. 그 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조직 구성원들은 모두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나 그들이 이룬 조직은 어딘지 모르게 자주 삐걱거리고 영민함을 발휘하지 못했다.

불신

99년 초 약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지식경영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세미나에는 컨설팅 업계의 관계자와 SI 업체의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참 말들이 오간 뒤 세미나의 관심은 온통 지식경영이 성공할 것인가 하는 데에 모아졌다. 과연 조직 구성원들이 지식 나누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인가 하는 주제로 설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토론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지식경영 컨설팅과 새로 개발된 솔루션으로 주목을 받던 회사의 컨설턴트가 말문을 뗐다.

“아무래도 힘들겠죠. 저희 회사가 몇 년 앞을 바라보고 지식경영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지만 현재로서는 비관적입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이 지식을 공유할 마음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이 쓰레기라도 올리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마저도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핵심 지식은 누구에게도 알려 줄 수가 없지요. 결과는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가 가진 노하우를 공유하게 되면 회사에서는 분명히 저를 자를 텐데요.”

시간이 흐른 후 그 회사는 많은 솔루션을 팔았고,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자기 자신은 정작 지식을 공유하는데 실패했다. 잘 설계되고 구축된 솔루션이 뛰어난 컨설턴트와 엔지니어들의 쓰레기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대화의 단절

90년 대 후반 지식경영의 열풍과 함께 한 대기업에서도 솔루션 도입과 지식경영을 실천하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물론 지식경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기업의 앞날을 걱정하는 CEO였고 결정 또한 그가 주도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직원들은 그 과정을 아무것도 모른체 사내 인트라넷의 공지와 사내방송을 통해 소식을 전달 받았다. 다들 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새로 바뀐 지식관리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이 귀찮을 뿐이었다.

직원들은 매일 지식을 등록하도록 재촉 받기 시작했고 잡다한 기사며 읽을 거리, 업무 매뉴얼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과 운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회의 시간에도 그저 준비된 자료를 설명하고 할 일을 전달 받을 뿐이었다. 애초 지식경영 운동을 전달 받을 때와 같이 이 회사에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일방적이었다. 그들은 업무 후 술을 마시며 나누는 한담 이외에는 대화를 나누기를 꺼리고 있었다. 회사의 조직 문화가 그러했다.

“어떻게 말을 꺼냅니까? 웃기만 해도 쓸데없이 농담이나 하고 있다고 욕먹는 판에… 그저 하는 얘기나 듣고 따라 하면 중간이나 가지요.”

얼마 후 회사는 불편하기만 한 지식관리시스템을 없애고 예전 시스템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아니, 일이 어떻게 돌아 갔는지 전혀 모르고 있던 CEO에 의해 성공적인 지식경영을 위한 또 다른 솔루션을 새로 구축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관료화

몇 해전 공기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로운 사장의 취임과 함께 지식경영 추진을 위한 경영혁신 팀이 만들어졌다. 외부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본사로 발령을 받아 왔고, 사장에게 직접 보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어지간한 일에는 미동조차 않던 거대한 공룡과 같은 회사에 작지만 의미 있는 바람이 불었고, 특히 담당부서 사람들은 CEO의 전폭적인 지원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하지만 희망에 가득 찬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식경영을 위한 효과적인 조직구조와 당시 조직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담은 첫 번째 보고서가 사장에게 전달되었을 즈음 임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고 느낀 몇몇 임원들은 격분한 나머지 담당부서를 찾아 가 서류를 집어 던지며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다. 결국 회사 임원들은 혁신 팀의 모든 업무를 보고 받기로 하는 선에서 담당부서의 활동을 인정하기로 했고 사장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들었다. 결국 CEO는 회사를 변화 시킬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임원들로 인해 알맹이 없는 보고만을 받게 됐고, 담당부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됐다.
얼마 후 혁신 팀의 직원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다.

“너무 참을 수가 없더군요. 정말 큰 맘 먹고 보고서를 다시 만들어 사장실로 직행했습니다. 그리고 보고서를 드리고 나왔지요.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됩니다만 후회는 없습니다.”

결국 그 회사의 새로운 조직에 대한 의지와 희망은 흐지부지 사라지게 됐고, 그 뒤로도 끊임 없는 분규와 충돌로 몸살을 앓게 됐다.

조직 그리고 사람

지식경영은 이미 알고 있듯이 지식을 창출하고 그것을 공유하는데 있다. 그리고 그 순환의 고리를 영속적으로 지속시키는데 있다. 만약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지식경영은 창조적 순환의 과정이다. 그 순환의 과정에 결함이 있다면 그것은 지식경영이 아닌 이전의 대안들과 다름이 없는 개념이 되고 만다. 앞에서 본 실패한 사례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조직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가 지식경영의 순행적인 흐름에 치명적인 결점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건강한 조직’은 지식경영을 위한 근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인 것이다. 지식경영의 이론적 정의에는 그러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지만 정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론적 정의는 사고의 흐름을 충실하게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반면 우리가 본 사례들은 근원적인 문제를 무시해 지식경영이 실패할 수 있는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지식경영의 성공에 대한 해답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사례들이 모두 기업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문화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또한 쉽게 알 수 있다. 90년대가 대안의 시대였다면 사람의 시대이기도 하다. 직무 중심의 인사관을 가지고 있던 미국과 유럽이 한국과 일본의 인사관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지식경영에 실패한 사례들이 모두 이러한 흐름을 포착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의 영리함에 탄복해 있을 때 그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장점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한 ‘건강한 조직’ 만들기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식경영의 성공과 실패, 그 귀착점

지식경영의 성공은 전적으로 기업이 어떤 조직문화를 가졌느냐에 달려 있다. 성공한 기업이라면 건강한 조직을 그리고 건전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패했다면 기업의 조직문화를 점검하고 과감히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마치 아이들을 영리하기만 하고 버릇없이 키우기 보다는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겸손하고 사려 깊도록 키우는 것과 같다. 이러한 비유는 조직이 형성되는 초기라면 비교적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쉽지만 이미 다 자라 성인이 된 조직이라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쩌면 그 어려움이 똑똑한 조직을 만드는 것에만 몰두하도록 하는지 모르겠다.

영리한 조직을 만들 것인가 건강한 조직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결정은 전적으로 회사 경영자의 손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 해답은 명확하다. 불확실성의 시대가 가져 올 거대한 힘과 불안함을 모두 떨쳐 낼 수 있는 것은 건강한 조직 뿐이다. 이미 늦었다고 후회하기에는 우리의 기업 역사가 일천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가장 똑똑하지만 건강하지는 못했던, 우리가 보아 온 실패 사례들의 문제점을 고루 갖추고 있던 GE가 세계 최고의 지식기업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도 결코 늦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지식경영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기술적이고 명확한 단서들을 원했을지 모른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수 많은 사례들에서 공통적이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고 모호한 개념이긴 하지만 이제 지식경영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알 수 있게 됐다. 그것은 지식경영의 모든 성공과 실패가 ‘건강한 조직과 조직 문화’라는 하나의 사실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지식경영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자 대안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경영에서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서 영리함만을 추구하던 과거를 버리고 건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에서 직원들이 물고기를 하늘 높이 던지는 행위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처럼 보인다. ‘겅호’에서 모든 직원들이 겅호를 크게 외치는 것은 마치 사교 집단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매우 유치하고 비생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그런 행동을 통해 스스로가 만든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건강해 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는데 거리낌이 없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영리해져 가는 것이다. 영리하기만 한 조직이라면 결코 물고기를 던질 생각도 겅호를 외칠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마음 속 깊은 내부의 자물쇠로 꼭꼭 채워두려 하기 때문이다.

출처 : 주식회사 녹십자 사보 2002년 5,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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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지식사회’의 전초전을 알리는 훌륭한 선전포고가 되어 주었다. 전통 경제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된 낯선 가치인 ‘정보’는 이제 생명력을 가진 ‘지식’으로 탈바꿈하여 우리 앞에 섰다. 더 이상 지식이 경제를 주도하는 핵심가치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이제 지식은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됐으며 이것은 경제의 중추인 기업에 있어서도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제 기업이 지식근로자를 양성해야 할 이유는 더욱 확실해졌다. 단순히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고부가가치의 창출 혹은 효율성 확보 등의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은 기업 경영의 핵심이며 사활이 걸린 중요한 일이라는 점이다. 이제 경영활동에 있어 지식창출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됐으며,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결정적 성공요인이 됐다.

하지만 기업의 지식은 기업 그 자체의 경영활동과 노력만으로는 쉽게 포착하고 활용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지식의 원천이 기업이 아닌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인적자원이기 때문이다. 기업 수준에서의 지식공유와 활용을 위한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식의 올바른 활용과 창출을 위해서는 지식의 주체인 ‘인적자원’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기업에 있어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불공정하게 혹은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기업의 핵심인력은 바쁜 업무부담으로 교육의 기회를 상실하는 반면, 비교적 지식집약의 강도가 낮은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육의 기회가 돌아가는 일들이 흔치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교육에 대한 임원과 구성원들의 이해부족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경영진 중 직원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이 조직구성원들을 조직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며, 이로 인해 최소한의 교육이나 실제 활용도가 낮은 불필요한 교육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에 조직구성원들은 사내교육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수준이거나 오히려 심리적 부담을 늘리는 일로 치부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지식근로자의 양성은 기업과 조직구성원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조직구성원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조직구성원들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오히려 장기적으로 본다면 뛰어난 교육여건으로 인해 더 나은 인재를 확보하고 조직 내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지식근로자의 양성이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견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기회의 부여로 인해 조직 내 인력 배치의 유연성을 확보해 조직유연성과 신입사원 육성을 위한 기회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나아가 조직구성원 개개인의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여 조직의 기여도를 향상시킬 수 있게 된다.

지식근로자의 양성은 궁극적으로 조직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한 인프라로 이해될 수 있지만 그밖에 조직구성원 개개인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을 통해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효과들을 함께 얻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더 이상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식시대의 기업을 초일류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원동력은 ‘지식’이다. 이제 지식의 원천인 지식근로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늦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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